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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만들지 않지만, 특허는 판다?

by 박 민 2025. 5. 31.

"기술은 만들지 않지만, 특허는 판다?"
이 글은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불리는 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특허 분쟁을 일으키고, 왜 이 문제가 전 세계 기술 생태계에서 큰 위협이 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정리한 분석 글입니다.

 

 

👿 1. 특허괴물이란 무엇인가 — 이름은 괴물이지만, 정체는 아주 계산적이다

기술은 만들지 않지만, 특허는 판다?
기술은 만들지 않지만, 특허는 판다?

특허괴물(Patent Troll)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서도, 특허를 이용해 다른 기업들을 공격하거나 수익을 올리는 비영리 또는 페이퍼 컴퍼니 성격의 조직을 말합니다. 정식 명칭은 NPE(Non-Practicing Entity), 즉 ‘비실시 주체’이지만, 그 공격성과 기생성 때문에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주요 전략은 단순합니다.
① 사용 중인 기술에 대한 특허를 미리 사들이거나 모호한 특허를 등록해 놓고,
② 대기업 또는 다수의 스타트업들이 해당 기술을 사용했을 때 이를 침해라고 주장하며,
③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라이선스 비용 또는 합의금을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주로 법적 싸움을 두려워하는 스타트업이나, 이미 시장에 제품을 출시한 대기업을 노립니다. ‘지금까지 잘 팔았으니 특허 침해에 대한 보상금을 달라’는 방식이죠.
문제는, 이런 방식이 특허 제도의 본래 취지인 혁신 촉진을 오히려 억제하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기술 개발자들은 오히려 자신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허괴물의 등장은 단순한 법적 리스크를 넘어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강성, 오픈소스 협업, 기술 발전의 속도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술을 만들지 않지만, 기술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존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절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소송 하나로 회사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 조용한 협박이야말로 특허괴물이 가진 가장 무서운 힘입니다.

 

 

💼 2. 애플도 당했다? — 실제 사례로 보는 특허괴물의 작동 방식

특허괴물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지는 세계 최대 기술 기업인 애플(Apple), 삼성전자, 구글, 인텔, LG전자 같은 회사들도 수차례 이들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특허괴물 기업 중 하나인 Uniloc은, 한때 애플을 상대로 20건이 넘는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괴물의 전형’으로 불렸습니다. Uniloc은 호주의 소프트웨어 특허를 사들인 뒤, 애플의 FaceTime, iCloud, 앱스토어 기능 등이 해당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소송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몇 차례 기각되기도 했지만, Uniloc은 관할 지역을 바꿔가며 같은 내용으로 지속적인 소송을 반복했고, 결국 애플은 막대한 소송비용과 법무 리스크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미국의 특허괴물 VirnetX는 애플의 FaceTime 영상통화 기능이 자신들의 VPN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천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0년 넘는 법정 싸움 끝에 2020년, 텍사스 법원은 애플이 5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는 특허괴물이 승소한 사례 중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Fractus, Erich Spangenberg, Intellectual Ventures 등 다양한 NPE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수백억 원에 이르는 합의금을 지불하거나 장기간 대응에 나서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특허괴물이 보유한 특허의 상당수가 애매하거나 너무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어 기술자 입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노려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 “소송보다 합의가 싸다”는 결정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괴물은 단 한 번의 물어뜯음으로 기업을 쓰러뜨리기보다는,
긴 시간 동안 법의 그늘 아래에서 서서히 압박해옵니다. 그 지독함이 그들의 무기입니다.

 

 

🧩 3. 우리는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 기업과 개발자에게 던지는 질문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특허괴물로부터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정답은 단순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습니다. 바로 “미리 특허를 확보하거나, 공동 방어 체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기업은 기술 개발 단계부터 선행 특허 조사를 철저히 수행하고, 출시 전 핵심 요소를 특허화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비용 문제로 이를 소홀히 할 수 있지만, 한 건의 방어용 특허가 수억 원의 소송을 막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허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Defensive Patent Pool(방어 특허 풀)’이나 ‘Open Invention Network’, RPX Corporation과 같은 공동 방어 조직이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기업들이 연합해 공동으로 특허를 관리하거나, 괴물의 소송을 무력화하기 위한 대응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특허괴물 규제를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 중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무분별한 특허 소송을 제한하기 위해 ‘특허 품질 강화법(PQRS)’이나 ‘특허 남용 방지법’ 등이 논의되어 왔으며, 과도한 손해배상 요구나 반복 소송을 제한하는 판례도 점점 쌓이는 중입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이젠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그 기술이 법적으로 얼마나 안전한가를 고민해야 할 시대입니다.
기술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기술을 지키는 힘, 바로 특허가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혁신을 막는 괴물에게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가 먼저 지켜내는 권리입니다.

 

 

특허괴물은 기술이 더 빨리 나아가는 것을 막는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지만,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을 발명하는 이유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 미래가 정당한 권리 없이 멈추는 일이 없도록,
기술이 아닌 탐욕이 이기는 시대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기술을 보호하는 기술’을 알아야 합니다.

특허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그리고 그 생존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할 가장 조용한 전쟁입니다.